미루기의 본질은 게으름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오늘은 나는 나를 설득해 완벽해지지 않아도 시작하기로 했다.에 대해 이야기 하러 합니다.

완벽해진 다음에 시작하겠다는 말로 나를 보호해온 시간들
나는 오랫동안 나를 설득해왔다. 조금만 더 준비하고 시작하자고, 이번에는 대충하지 말고 제대로 하자고, 어설픈 상태로 덤비지 말고 완벽에 가까워졌을 때 움직이자고. 그 말은 언제나 논리적으로 들렸고, 성실한 사람의 태도처럼 보였고,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처럼 느껴졌다. 나는 나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 기준이 높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결과의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쉽게 만족하지 않는 사람, 허투루 시간을 쓰지 않으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그 믿음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준비는 계속되는데 실행은 없었고, 계획은 정교해지는데 결과는 없었고, 다짐은 반복되는데 변화는 없었다. 나는 늘 “곧 시작할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문제는 그 “곧”이 영원히 오늘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완벽해진 다음에 시작하겠다는 말은 얼핏 보면 책임감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조건문이다. “나는 충분히 준비되었을 때만 움직이겠다.” 그 말은 동시에 이런 뜻을 품고 있다. “나는 실패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는 움직이지 않겠다.” 여기서 핵심은 준비가 아니라 실패다. 나는 준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패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멈춰 있었던 건 아닐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노력하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족한 걸 인정하는 데에는 익숙했지만, 두려움을 인정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부족함은 발전 가능성을 의미하지만, 두려움은 나약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행동을 돌아보면 분명했다. 나는 해야 할 일이 중요할수록 더 미뤘다. 의미가 클수록, 나에게 영향이 클수록, 더 완벽해지기를 기다렸다. 반대로 비교적 부담이 적은 일은 바로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게으름의 패턴과는 다르다. 게으름은 모든 일을 회피한다. 하지만 나는 중요한 일만 회피했다. 왜 그랬을까. 중요한 일은 나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결과가 남고, 기록이 남고, 평가가 남는다. 그 평가가 나의 정체성과 연결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가능성 있는 사람, 제대로 하면 잘할 수 있는 사람, 아직 다 보여주지 않은 사람. 그런데 시작을 해버리면 그 가능성은 구체적인 결과물로 환원된다. 점수, 조회수, 피드백, 반응, 숫자. 추상적인 가능성은 안전하지만, 구체적인 결과는 잔인하다. 나는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미뤘다.
완벽은 목표가 아니라 방패였다. 나는 그 방패를 들고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준비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보냈고,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실행을 늦췄고,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시작을 유예했다. 나는 계속해서 배우고 있었고, 조사하고 있었고, 정리하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한 발을 내딛지 않았다. 그 한 발은 언제나 “조금 더 나아진 뒤”로 미뤄졌다. 그런데 문제는, 시작하지 않으면 결코 충분히 나아질 수 없다는 데 있다. 실행 없는 준비는 한계가 있다. 실제 부딪힘 없이 쌓이는 이론은 현실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왜냐하면 실행은 노출을 의미했고, 노출은 평가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나는 평가를 두려워했다. 타인의 평가뿐 아니라, 나 자신의 평가를 더 두려워했다.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던질 말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 정도밖에 안 되네.” “괜히 시작했어.” “역시 나는 특별하지 않아.” 나는 실패를 단순한 사건으로 보지 못했다. 그것을 나의 한계에 대한 판결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니 시작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나를 시험대에 올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완벽이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완벽해지면 덜 아플 것 같았고, 완벽해지면 실패하지 않을 것 같았고, 완벽해지면 적어도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완벽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기준은 계속 높아졌다. 조금 나아지면 또 다른 부족함이 보였고, 조금 익숙해지면 더 큰 목표가 생겼다. 나는 끝없는 준비 상태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 상태는 점점 나를 지치게 했다.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하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쌓이지 않았다. 경험도, 성취도, 교훈도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묘한 공허감을 느꼈다. 나는 열심히 생각하고 있는데, 현실은 변하지 않는 상태.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데, 결과는 없는 상태. 그 괴리가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나를 정직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게으른 게 아니었다. 나는 두려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라,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었다. 나는 아무 일에나 이렇게까지 망설이지 않았다. 정말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 나의 정체성과 연결된 일, 실패하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일들 앞에서만 멈췄다. 그렇다면 이건 게으름이 아니라, 과도한 의미 부여에서 비롯된 긴장에 가까웠다. 나는 시작을 ‘행동’이 아니라 ‘심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무언가가 조금 풀렸다. 완벽해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건, 대충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이렇게 말하는 것에 가까웠다. “결과가 나를 전부 정의하지는 않는다.” 이 한 문장이 나를 조금 자유롭게 했다. 시작은 여전히 두려웠지만, 전처럼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완벽해지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은, 나의 행동 기준을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충분한가’를 묻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충분함은 미래의 조건이지만, 할 수 있음은 현재의 선택이다. 나는 미래를 기다리는 대신, 현재를 붙잡기로 했다.
이 지점이 나의 첫 전환점이었다. 완벽이라는 이상을 내려놓은 게 아니라, 그것을 출발 조건에서 목표 지점으로 옮긴 것이다. 완벽해진 다음에 시작하는 게 아니라, 시작한 다음에 다듬어가는 것. 나는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그 작은 순서의 변화가, 나를 멈춰 세우던 오랜 패턴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미루기의 본질은 게으름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완벽이라는 방패를 내려놓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내 미루기의 구조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행동의 겉모습만 보고 나를 판단했다. 시작하지 않았으니 게으른 것이라고, 실행이 느리니 의지가 약한 것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니, 내 안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은 훨씬 복잡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멈춰 있던 게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하고 싶어서 멈춰 있었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비교적 쉽게 처리했다. 하지만 나에게 의미가 크고, 내 정체성과 연결된 일 앞에서는 유난히 느려졌다. 이 패턴은 우연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분명한 감정이 개입되어 있었다. 바로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상실에 대한 예감이고, 상처에 대한 예측이며, 자존감의 흔들림을 미리 감지하는 감각이다. 나는 시작하기 전에 이미 결과 이후의 장면을 상상하고 있었다. 잘 안 됐을 때의 표정, 누군가의 애매한 반응, 스스로에게 던질 냉정한 평가까지도. 나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수십 번은 실패한 사람처럼 마음이 무거웠다. 이건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게으름은 에너지가 없어서 움직이지 않는 상태지만, 나는 에너지가 있었다. 생각도 많았고, 계획도 있었고, 욕심도 있었다. 다만 그 에너지가 행동으로 흐르기 직전에, 두려움이라는 장벽에 막히고 있었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결과를 두려워했을까. 단순히 실패가 싫어서였을까. 깊이 파고들어 보니, 내가 진짜로 두려워했던 것은 실패 그 자체보다 ‘해석’이었다. 나는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잘되면 능력의 증거로 받아들이고, 잘 안 되면 한계의 증거로 받아들였다. 결과 하나가 나의 전체를 규정하는 것처럼 느꼈다. 이 사고방식이 시작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시작은 하나의 시도가 아니라, 나의 가치를 시험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나는 행동의 부담이 아니라, 정체성의 부담을 짊어지고 있었다.
미루는 순간들을 떠올려 보면,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해야지.” “어설프게 하면 안 돼.” “한 번 보여줄 거면 확실하게.” 이 말들에는 자신감이 아니라 긴장이 담겨 있었다. 나는 실패를 경험으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그래서 나를 더 낮게 평가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아예 시험대에 오르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 실패가 없으면 해석도 없다. 해석이 없으면 자존감도 안전하다. 나는 이렇게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호의 대가는 정체였다.
두려움을 인정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한 문장이었다. “나는 게으른 게 아니라, 무섭다.” 이 문장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강한 사람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을 인정하는 건 약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문장을 인정한 순간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두려움은 부끄러운 감정이 아니라, 중요한 걸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의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일에나 이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았다. 진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 앞에서만 멈췄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은 나의 진지함의 증거이기도 했다.
두려움을 인정하고 나니, 그동안 내가 나를 얼마나 몰아붙였는지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늘 결과 중심으로 사고했다. “이걸 해서 뭐가 남지?” “이걸 해서 얼마나 인정받지?” “이걸 해서 내가 얼마나 나아지지?” 행동의 가치는 결과에 의해 판정되었다.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그 행동은 실패로 분류되었다. 이 구조 안에서는 시작이 결코 가벼울 수 없다. 결과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에서는, 행동 하나하나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너무 큰 판결권을 쥐여주고 있었다. 작은 시도 하나에도 “합격” 혹은 “탈락”이라는 도장을 찍고 있었다.
그 구조를 깨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완벽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기준을 바꾸기 시작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초점을 옮기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았다. 여전히 결과는 중요했고, 여전히 인정받고 싶었고, 여전히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이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행동이 나를 한 발이라도 앞으로 움직이게 했는가.”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도, 그 과정이 나를 조금이라도 단단하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완전한 실패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고의 전환은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변화였다. 나는 더 이상 시작을 최종 시험처럼 보지 않았다. 시작은 연습에 가까워졌다. 연습은 완벽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연습은 부족함을 인정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연습은 반복을 전제로 한다. 이 구조 안에서는 한 번의 결과가 전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훈련하는 사람으로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느렸지만 확실했다.
완벽해지지 않아도 시작하는 사람으로 살기로 한 이후의 변화
완벽해지지 않아도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은 날 이후, 내 삶이 갑자기 기적처럼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두려움은 올라왔고, 여전히 망설임은 반복되었고, 여전히 어떤 일 앞에서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달라진 건 감정의 유무가 아니라, 감정과 나 사이의 거리였다. 예전의 나는 두려움이 올라오면 그것을 곧바로 결론으로 받아들였다. “무섭다 = 아직 아니다.” “부담스럽다 = 준비가 덜 됐다.” 이렇게 자동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완벽을 출발 조건에서 내려놓기로 한 이후, 나는 그 자동 해석을 멈추기 시작했다. 두려움은 신호일 뿐 결론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인식의 차이가 삶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행동을 미루던 방식부터 달라졌다. 예전에는 시작을 ‘한 번의 큰 결단’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의 문턱이 높았다. 오늘부터 완전히 달라져야 하고, 이번에는 반드시 제대로 해야 하고, 이왕 시작하는 거라면 눈에 띄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항상 거창해야 했다. 그러니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완벽을 내려놓으면서, 나는 시작을 ‘작은 단위의 반복’으로 보기 시작했다.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지금 가능한 수준에서. 완성도가 아니라 방향만 맞추는 식으로. 이 변화는 단순히 작업량의 조정이 아니라, 심리 구조의 재설계였다. 나는 더 이상 시작을 통해 나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시작을 통해 나를 훈련시키려 했다.
그 결과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실패에 대한 태도였다. 예전의 나는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그 일을 멈췄다. 한 번의 부족한 결과는 내 능력의 증거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다시 도전하는 게 더 무서웠다. 하지만 완벽을 전제로 하지 않기로 한 이후, 나는 결과를 ‘데이터’처럼 보기 시작했다. 잘 되지 않았으면 왜 그런지 분석했고, 부족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확인했고, 그 다음 시도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바꾸려고 했다. 중요한 건 한 번의 완성도가 아니라, 반복 속의 개선이었다. 이렇게 접근하니 실패는 정체성의 상처가 아니라, 방향 조정의 자료가 되었다. 이 차이는 매우 컸다. 나는 더 이상 결과에 의해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라, 결과를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또 하나 크게 달라진 건 자존감의 구조였다. 예전의 나는 성취 기반 자존감에 가까웠다. 잘되면 괜찮은 사람이 되고, 잘 안 되면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자존감이 결과에 따라 출렁였다. 그래서 시작은 항상 위험했다. 하지만 완벽해지지 않아도 시작하기로 한 이후, 나는 자존감을 다른 기준 위에 올려놓으려고 노력했다. 결과가 아니라 태도 위에. “오늘도 멈추지 않았는가.” “두려웠지만 한 발 내디뎠는가.” 이 질문들이 내 기준이 되었다. 결과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많지만, 태도는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 위에 자존감을 쌓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자존감은 예전보다 덜 흔들렸다. 잘되는 날은 기쁘지만 과하게 들뜨지 않았고, 잘 안 되는 날은 아쉽지만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았다.
완벽을 내려놓으면서 뜻밖의 자유도 얻었다. 나는 더 이상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의 이미지를 유지하려 애쓰지 않았다. 대신 “계속 시도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 정체성의 전환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믿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나는 나를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으로 정의했을 때, 실제로 기다리는 선택을 반복했다. 하지만 나를 두려워도 움직이는 사람으로 정의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움직이는 선택을 반복하게 되었다. 정체성이 바뀌니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니 경험이 쌓이고, 경험이 쌓이니 다시 정체성이 강화되는 선순환이 만들어졌다.
물론 여전히 흔들린다. 여전히 비교는 올라오고, 여전히 남들의 성과는 자극이 되고, 여전히 “저 정도는 돼야 시작하지”라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생각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 생각은 과거의 나를 묶어두던 패턴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한 번 더 묻는다. “정말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 나는 고개를 젓는다. 기다림이 나를 성장시킨 적은 거의 없었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나를 성장시킨 건 언제나 서툰 시작, 부족한 시도, 어색한 실행이었다.
완벽해지지 않아도 시작하는 삶은 더 피곤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더 자주 부딪히고, 더 자주 부족함을 확인하고, 더 자주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예전보다 덜 지친다. 준비만 하며 제자리걸음을 하던 시간보다, 실제로 움직이며 부딪히는 시간이 더 생동감 있다. 공허함이 줄어들었다. “나는 지금 뭔가를 하고 있다”는 감각이 나를 살게 한다. 완벽은 여전히 멀리 있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앞에서 멈춰 서 있지 않는다. 나는 완벽을 향해 가는 도중에 있는 사람이다. 도중에 있다는 건,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이 선택은 생산성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완벽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는 나를 실행의 기준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완벽은 도착지이고, 실행은 현재다. 나는 도착지에 서 있지 않지만, 길 위에는 서 있다. 그리고 길 위에 서 있는 사람만이 결국 어딘가에 도착한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안다.
나는 나를 설득했다. 완벽해지지 않아도 괜찮다고. 두려워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이 있어도 멈추지 않는 태도라고. 미루기의 본질이 게으름이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나는 나를 비난하는 대신 이해했고, 이해하는 대신 선택했고, 선택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완벽은 아직 아니다. 하지만 나는 시작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이미 충분히 큰 변화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