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 실패에 대해서 이야기하러 한다. 실패에는 늘 따라붙는 질문이 있다.
“그래서 뭘 배웠어?”
우리는 실패를 겪고 나면, 반드시 무언가를 건져 올려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교훈, 성장, 깨달음 같은 단어들로 실패를 정리하지 않으면, 그 경험 자체가 무가치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 실패를 마주했다. 곱씹어도 남는 말이 없었고, 정리해도 의미로 연결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 공백이 두려웠다. 실패했는데 배운 것도 없다니, 이중으로 패배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실패와 함께 보낸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조금 다른 깨달음에 도달했다. 모든 실패가 의미를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실패를 반드시 의미로 바꾸려 했던 습관
나는 실패를 겪을 때마다 서둘러 해석하려 했다. 감정이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 일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를 먼저 묻는 사람이었다. 그 질문은 성숙해 보였고, 어른스러운 태도처럼 느껴졌다. 실패를 감정으로 오래 끌지 않기 위한 일종의 정리 작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생각보다 폭력적이었다. 아직 아픈데, 아직 납득되지 않았는데, 나는 스스로에게 억지로 의미를 요구했다. 실패의 상처를 들여다보기보다는, 그 위에 교훈이라는 포장을 덮어버렸다. 그렇게 만들어낸 의미들은 대부분 진심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올리면 공허했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도 못했다.
의미를 만들지 못한 실패는 더 불편했다. 설명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나는 그 실패를 미완성된 경험처럼 취급했다. 마치 교훈이 있어야만 실패가 완료되는 것처럼, 나는 스스로 기준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 기준은 나를 성장시키기보다는,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실패 앞에서
문제의 실패는 특별히 극적이지도 않았다. 큰 교훈이 담길 만큼 거창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쉽게 잊히지도 않았다. 여러 번 되짚어 보았지만, 명확한 원인도, 뚜렷한 배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일이 어긋났고, 결과가 좋지 않았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의미 없는 실패라니. 하지만 계속해서 의미를 찾으려 애쓸수록, 나는 실패보다 나 자신을 더 몰아붙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정도 일에서조차 배우지 못하다니’라는 또 다른 자기비난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의미를 강요하는 태도가 문제였다는 것을. 실패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많은 감정과 경험을 남겼다. 실망, 허탈함, 자존심의 상처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겪는 것만으로도, 그 실패는 이미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의미를 만들지 않기로 한 순간,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았고,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실패를 교훈으로 환원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었다.
의미 없이 남겨두는 용기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 실패는 나에게 다른 종류의 용기를 가르쳐 주었다. 모든 경험을 성장 서사로 엮지 않아도 된다는 용기였다. 우리는 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과거의 모든 일을 ‘쓸모 있는 이야기’로 바꾸려 한다. 하지만 삶에는 그냥 흘러가도 되는 순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의미 없이 남겨둔 실패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흐려졌다. 억지로 붙잡고 해석하지 않았기에, 그 실패는 어느 날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실패를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나는 더 이상 모든 실패 앞에서 배울 준비를 하지 않는다. 대신, 느낄 준비를 한다.
이제 누군가 실패 후에 교훈을 묻는다면, 나는 솔직해질 수 있다. “이번엔 잘 모르겠어요.” 그 대답은 부끄럽지 않다. 의미를 만들지 않아도, 실패는 실패로서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 실패를 통해,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삶의 모든 장면이 설명 가능할 필요는 없다는 것. 그리고 의미를 만들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 깨달음 하나만으로도, 이 실패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