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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뒤처진다고 느꼈는데, 어느 날 비교 자체가 사라진 순간

by think28148 2026. 1. 26.

속도가 아니라 시선이 바뀐 경험
오늘은 계속 뒤처진다고 느꼈는데 어느날 비교 자체가 사라진 순간에 대해 이야기 하러 해.

 

 

계속 뒤처진다고 느꼈는데, 어느 날 비교 자체가 사라진 순간
계속 뒤처진다고 느꼈는데, 어느 날 비교 자체가 사라진 순간

 

늘 뒤에 있다는 감각이 나를 먼저 규정해버리던 시간

그때의 나는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은 늘 가장 불리한 기준으로만 나를 재단하고 있었다. 남들과 비교할 때도 평균이 아니라 상위 몇 퍼센트만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 기준에 닿지 못하는 나는 항상 부족한 쪽에 놓였다. 그래서 노력해도 성취감이 쌓이지 않았고, 성취가 있어도 곧바로 무효 처리되었다.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해.”라는 말이 내 안에서 자동으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건, 그 기준이 명확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언제까지 무엇을 얼마나 해야 충분한 건지, 나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건, 지금의 나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감각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향해 달리기보다는, 늘 부족함을 증명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목표를 향해 가는 사람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지만, 부족함을 피하려는 사람은 넘어지는 순간 모든 걸 잃은 기분이 든다.

나는 자주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왜 이렇게 늦을까”, “왜 남들처럼 빨리 결정하지 못할까”, “왜 나는 항상 한 박자씩 느릴까.” 이런 질문들은 겉보기엔 자기 성찰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나를 몰아붙이는 방식이었다.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나를 꾸짖기 위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그 질문들에는 언제나 같은 결론만 달라붙었다. “너는 부족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점점 나 자신의 속도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이 선택이 옳은지 판단하기 전에 “이건 너무 늦은 선택 아닐까?”라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그 의심은 선택의 질과는 상관없이 항상 따라붙었다. 선택이 좋든 나쁘든, 나는 늘 불안했다. 불안이 사라질 조건은 단 하나, 남들보다 앞서 있다는 확신이었는데, 그 확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나는 종종 나보다 먼저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를 점검했다. 그들이 몇 살에 무엇을 했는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얼마나 빨리 성과를 냈는지를 세세하게 비교했다. 처음에는 참고 자료처럼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비교는 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잣대는 늘 나에게 불리하게 작동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의 시작 조건, 환경, 배경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결과만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는 내 삶을 하나의 연속된 이야기로 보지 못했다. 대신 잘려진 장면들만 보았다. 남들보다 뒤처진 장면, 멈춰 있었던 장면, 망설였던 장면. 그 장면들만 떼어 놓고 보면, 나는 정말로 뒤처진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 내가 견뎌온 시간, 멈춰야 했던 이유, 돌아가야 했던 사정들은 전부 삭제된 상태였다. 나는 나 자신의 맥락을 스스로 지워버리고 있었다.

특히 힘들었던 건, 내가 멈춰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들은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 시간을 부끄러워했다. 쉬었던 시간, 방황했던 시간, 아무 결정도 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전부 실패로 분류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 시간들은 내가 무능해서 생긴 공백이 아니라, 이미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있었기 때문에 생긴 정지였다는 사실을.

그 당시의 나는 몰랐다. 몸이 먼저 멈추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마음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신호를 보내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나는 그 신호를 존중하기보다는, 나약함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억지로 나를 끌고 가려 했고, 그럴수록 더 깊이 지쳤다.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을 다그친 결과는, 오히려 완전한 정지였다.

나는 그 정지 상태에서도 계속 비교했다. 남들은 이 시간에 뭘 하고 있을지 상상했고, 그 상상은 늘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확인한 것도 아닌데, 나는 이미 패배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 비교는 현실이 아니라 상상이었지만, 그 상상은 현실보다 더 강력하게 나를 흔들었다.

그렇게 비교에 잠식된 시간 동안, 나는 나 자신을 거의 돌보지 않았다. 나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묻기보다는, 남들이 요구할 것 같은 기준을 먼저 떠올렸다. 나는 늘 “이 정도면 괜찮아 보일까?”를 기준으로 움직였고, “이게 나에게 맞는가?”라는 질문은 뒤로 밀렸다. 그 결과, 나는 점점 나와 멀어졌다. 나의 감각, 나의 리듬, 나의 욕구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뒤처진다는 감각이 너무 익숙해져서 이상하지도 않게 느껴졌다. 마치 내 정체성의 일부처럼 굳어졌다. “나는 원래 늦어”, “나는 원래 남들보다 한 템포 느려.”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말들은 사실 설명이 아니라 낙인이었다. 나를 이해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단정 짓는 말이었다.

그 단정은 나의 가능성을 미리 닫아버렸다. 새로운 시도를 떠올리기만 해도, “지금 시작해봤자 늦었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시작하지 않았으니 실패도 없었지만, 동시에 변화도 없었다. 그리고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다시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 악순환은 아주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이어졌다.

그 시절의 나는 항상 미래를 걱정했지만, 정작 현재를 살지 못했다. 지금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이 힘든지,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대신 “앞으로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만 반복했다. 그 질문은 답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불안을 키웠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나는 현재를 계속 놓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단순히 뒤처진 게 아니었다.
나 자신을 기준으로 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나는 꽤 오랜 시간을 헤매야 했다.

비교가 멈춘 게 아니라, 비교할 필요가 없어졌던 순간

비교가 사라졌다고 말하면, 마치 내가 어떤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비교를 극복한 사람이 아니라, 비교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 도달했을 뿐이다. 비교를 멈추겠다고 다짐해서 멈춘 게 아니라, 비교를 계속 붙들고 있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어긋나 버린 상태였다.

그전까지의 비교는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연료처럼 작동했다. 불안했지만, 그 불안 덕분에 어떻게든 앞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은 있었다. 남들보다 느리다는 감각은 괴로웠지만, 동시에 나를 계속 긴장 상태로 유지시켰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연료가 더 이상 나를 움직이지 못했다. 비교는 나를 밀어주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멈추게 했다.

그 시점에서 나는 깨달았다. 더 이상 남의 속도를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는 방식으로는, 다음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왜냐하면 그 기준으로는 어떤 선택을 해도 항상 늦었고, 항상 부족했기 때문이다. 선택의 결과가 어떻든 상관없이, 나는 이미 실패한 상태로 출발하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겠구나.”

이 생각은 체념에 가까웠지만, 동시에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비교를 내려놓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지만, 비교를 붙잡고 갈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졌다. 마치 길이 갑자기 끊겨버린 것처럼, 나는 더 이상 앞사람을 보고 따라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 상태에서 나는 처음으로 멈춰 섰다. 의도적인 휴식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서 멈춘 정지였다. 이전까지의 멈춤은 늘 죄책감을 동반했지만, 그때의 멈춤은 조금 달랐다. 죄책감보다 먼저 든 감정은 혼란이었다. “이제 뭘 기준으로 움직여야 하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질문에 바로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대신 아주 기본적인 감각부터 다시 확인해야 했다. 이 선택을 떠올리면 내 몸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이 방향을 생각하면 숨이 더 막히는지 아니면 조금은 편해지는지. 이전까지는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기준들이었다. 나는 늘 결과와 속도만 계산했지, 내가 견딜 수 있는지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비교가 사라지기 시작한 건 바로 이 지점이었다. 남들보다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앞서 있는지가 아니라, 이 속도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은 놀라울 만큼 정직했다. 꾸밀 수도 없었고, 속일 수도 없었다. 몸은 이미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면 무너지고, 어디까지 가면 버틸 수 있는지를.

이 기준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기준은 대부분의 경우, 내가 바라던 속도보다 훨씬 느렸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으로는 아직도 “조금만 더 빨리 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몸과 마음은 이미 “이 이상은 무리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간극을 인정하는 일이, 비교를 내려놓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그 간극을 인정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속도가 느린 나를 변명 없이 받아들이는 경험을 했다. 이전에는 “지금은 상황이 안 좋아서”, “환경이 달라서”, “기회가 없어서”라는 이유를 붙였지만, 그때는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그냥 지금의 나는 이 속도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 인정은 패배 선언이 아니라, 현실 인식에 가까웠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부터 비교는 점점 힘을 잃었다. 비교할 대상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 비교가 더 이상 나를 설명해주지 못했다. 남들은 여전히 빠르게 가고 있었지만, 그 사실이 곧바로 나의 무능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나에게 맞지 않는 속도를 억지로 따라가다 무너졌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는 남들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성공담을 들으면 자동으로 나 자신과 대조했다. “나는 왜 저렇게 못 하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하지만 비교가 옅어지자, 그 질문은 더 이상 자동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저 사람은 저런 조건에서 저렇게 갔구나” 정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더 이상 나의 평가표가 아니었다.

비교가 줄어들자, 선택의 기준도 단순해졌다. 잘 보일 선택인지, 뒤처지지 않아 보일 선택인지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덜 망가뜨리는 선택인지가 중요해졌다. 이 기준은 겉으로 보기에는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나에게는 처음으로 지속 가능한 기준이었다. 그 기준 덕분에 나는 최소한 스스로를 소모시키지 않으면서 움직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게 있다.
나는 비교를 통해 성장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비교를 통해 버티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버티는 삶에서는 잠시 앞으로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오래 갈 수는 없다. 비교가 사라지기 시작한 건, 내가 더 이상 버티는 삶을 유지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한계가 나를 다른 기준으로 이동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남들과 같은 속도로 가지 않아도,
남들과 같은 방향에 있지 않아도,
삶이 실패가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비교는 그렇게, 아주 조용히 내 삶의 중심에서 물러났다.
싸워서 이긴 게 아니라,
필요 없어져서 사라진 것처럼.

속도가 아니라 시선이 바뀌자, 삶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선이 완전히 바뀐 이후, 나는 삶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 자체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삶을 일종의 시험처럼 여겼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답에 최대한 가깝게 도달해야 하는 시험. 그래서 늘 긴장했고, 실수 하나에도 크게 흔들렸다. 시험에서는 실수가 곧 감점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을 그렇게 채점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삶을 시험이 아니라 과정으로 바라본다. 과정에는 오답도 포함되고, 돌아가는 길도 포함된다. 무엇보다 과정에는 ‘속도 차이’가 전제로 깔려 있다. 누구는 빨리 이해하고, 누구는 오래 걸린다. 그런데 그 오래 걸림이 곧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는 이해와 감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 인식은 나를 훨씬 관대하게 만들었다. 과거의 나를 다시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과거를 돌아보며 “왜 그때 그렇게밖에 못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이제는 “그때의 나는 그 정도까지가 최선이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사실에 가까웠다. 나는 그 시기의 나에게 지금의 체력도, 지금의 이해도, 지금의 시선도 없었다.

늦게 가는 시간은 나에게 선택의 이유를 더 많이 요구했다. 빨리 갈 때는 이유가 필요 없었다. 다들 그렇게 가니까, 그렇게 하면 되니까. 하지만 늦어지면 설명이 필요해진다. 왜 이 길을 가는지, 왜 이 속도를 택했는지, 왜 지금 멈춰 있는지. 이 질문들에 답하려면, 결국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질문들 덕분에, 내 삶의 기준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그 기준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소박했다. 오늘의 나를 내일의 내가 원망하지 않을 선택인가, 이 선택이 나를 더 고립시키지는 않는가, 지금의 나를 너무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기준들은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었지만, 나를 오래 데려갈 수 있는 기준이었다.

시선이 바뀐 이후, 나는 불확실함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불확실함을 견디지 못했다. 결과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무리한 결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불확실함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은 없다는 걸 안다. 다만, 불확실함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와 그렇지 못한 상태가 있을 뿐이다.

이 차이를 알게 되자, 나는 불확실함을 무작정 제거하려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그 불확실함 속에서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지를 먼저 살폈다. 불확실함 자체보다, 그 불확실함을 안고 가는 나의 상태가 더 중요해졌다. 이 전환은 삶의 결정을 훨씬 차분하게 만들었다.

늦게 가는 사람으로 살면서 얻은 또 하나의 변화는, 속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내려놓게 되었다는 점이다. 빠르다고 해서 성실한 것도 아니고, 느리다고 해서 게으른 것도 아니라는 걸 실제 삶에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속도는 성격도, 가치도 아니다. 조건과 상황,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결과일 뿐이다.

이 인식 덕분에, 나는 나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훨씬 덜 잔인해졌다. 누군가가 멈춰 있거나, 돌아가거나, 늦어질 때 그 이유를 함부로 추측하지 않게 되었다. 각자의 삶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선이 바뀌자, 나는 더 이상 인생을 한 줄로 세우지 않는다. 앞사람과 뒷사람이 분명하게 나뉘는 직선 트랙 위에 있다고 상상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가 서로 다른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곡선은 초반에 급하게 올라가고, 어떤 곡선은 한참 뒤에 완만하게 상승한다. 중요한 건, 그 곡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다.

이 관점은 나에게 묘한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남들보다 늦게 가는 날에도, 나는 내 곡선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비교는 여전히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지만, 그때마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린다. 남들의 위치가 아니라, 내가 지나온 궤적을 향해. 그 궤적 위에는 분명히 나만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이제 성취보다 누적을 믿는다. 하루하루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 나를 만든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래서 오늘 하루가 아주 작게 느껴져도, 그 하루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빨리 가던 시절에는 하루를 소모품처럼 사용했다면, 지금은 하루를 연결 고리처럼 다룬다.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훨씬 큰 격차를 만든다.

늦게 가는 삶은, 겉으로 보면 불리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이 삶은 나에게 나를 잃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는 걸. 빨리 가는 법보다, 무너지지 않는 법을 먼저 배웠다는 걸. 그리고 그 배움은, 어떤 성과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괜찮아, 늦어도 돼”라고 스스로를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이 속도는, 내가 나로 남기 위해 선택한 속도다.”

이 문장은 위로가 아니다.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