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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된다”는 말이 가장 무책임하게 들렸던 실패

by think28148 2026. 1. 21.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던 순간
오늘은 하면 된다 라는 말이 가장 무책임하게 들렸던 실패에 대해 이야기 하러 합니다.

 

 

 

“하면 된다”는 말이 가장 무책임하게 들렸던 실패
“하면 된다”는 말이 가장 무책임하게 들렸던 실패

 

 

 

가장 많이 들었고, 가장 쉽게 던져진 말

실패한 뒤,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은 거의 예외 없이 같았다.
“그래도 하면 되잖아.”
“조금만 더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의지 문제지, 결국은.”

이 말들은 언제나 빠르고, 가볍고,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듯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그 말 속에는 질문이 없었다. 대신 확신만 있었다. 실패의 원인은 이미 규정되어 있고,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태도였다.

이 문장이 유독 힘든 이유는, 반박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하면 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상에는 그렇게 해서 해낸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어디에서나 증명처럼 인용된다. 그래서 이 말을 듣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저 사람들은 했는데, 나는 왜 못했지?’라는 질문으로 사고가 흘러간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에는 그 말을 거부하기보다 받아들였다. 실패의 원인을 환경이나 운, 구조 같은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건 어쩐지 변명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내 의지가 부족했다고 인정하는 편이 더 솔직하고 책임감 있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직 희망도 남아 있었다. 의지는 다시 다질 수 있고, 마음은 다시 먹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다시 시작했다.
이전보다 더 철저하게 계획을 세웠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쉬는 시간은 줄였고, 감정이 흔들릴 틈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다들 이 정도는 견딘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포기하고 싶다는 감정은 의지가 약해졌다는 신호라고 해석했고, 그럴수록 더 강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노력의 양은 줄지 않았는데, 집중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도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날이 늘었고, 작은 실수에도 감정이 크게 요동쳤다. 결과가 나쁘면 ‘역시 의지가 부족해서 그래’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였고, 그 생각은 다시 더 많은 부담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하면 된다”는 말이 조금씩 다른 얼굴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말은 더 이상 나를 일으켜 세우는 문장이 아니었다.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는 사람에게, 지금까지의 노력은 전부 무시한 채 결과만으로 판단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상태는 고려 대상이 아니며, 오직 결과만이 기준이라는 메시지였다.

나는 정말 안 했던 걸까?
정말 덜 간절했던 걸까?
아니면, 이 실패는 애초에 그렇게 단순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종류였던 걸까?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시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실패의 원인을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했다.

의지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이미 한계를 넘고 있었던 상태

사람들은 흔히 실패를 마지막 장면으로 기억한다. 끝내 해내지 못한 순간, 포기한 지점,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만을 보고 판단한다. 그래서 실패의 원인도 늘 마지막에 있는 것처럼 말한다. 조금만 더 버텼으면, 조금만 더 참았으면, 마지막 한 고비만 넘었으면 달라졌을 거라고.

하지만 내가 겪은 실패는 마지막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문제는 그 이전, 너무 오래 버텨왔다는 사실에 있었다.

나는 이미 여러 번 한계를 넘긴 상태였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했고, 쉬어야 한다는 감각을 합리화로 덮었다. 힘들다는 감정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고, 멈추고 싶다는 생각은 패배로 간주했다. 그렇게 한계를 한 번 넘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어디까지가 정상인지조차 잘 느껴지지 않았다.

의지가 부족한 상태와 이미 소진된 상태는 겉으로 보면 비슷하다.
둘 다 멈춰 있고, 둘 다 성과가 없으며, 둘 다 실패라는 단어로 묶인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의지가 부족한 사람은 쉬고 나면 다시 움직일 수 있다. 반면 이미 소진된 사람은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다. 에너지가 충전되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해서 출력을 요구받는 셈이다.

그 시기의 나는 명백히 후자였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피로가 느껴졌고,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졌다. 해야 할 이유는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시작할 힘이 없었다. 게으른 게 아니라, 이미 너무 오래 긴장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은 늘 같았다.
“다들 힘들어.”
“원래 이 과정은 다 그래.”
“이 정도도 못 버티면 나중에 더 힘들어.”

이 말들은 공감처럼 들렸지만, 실제로는 나의 상태를 지워버렸다. 모두 힘들다는 말은, 결국 네가 느끼는 이 고통은 특별히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작동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었다.

‘왜 나는 이 정도도 못 견디지?’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지?’
‘결국 내 의지가 약한 걸까?’

이 질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나를 더 깊은 자기비난으로 끌어당겼다. 실패의 원인을 전부 나의 성격과 태도로 돌리면서, 나는 점점 나 자신과 싸우게 되었다. 그 싸움은 끝이 없었고, 이길 수도 없었다. 이미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일은, 회복이 아니라 소진을 가속시키는 일이었다.

그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하면 된다”는 말이 무책임하게 들렸던 이유는, 그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아직 여력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는 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한계를 넘은 사람에게는, 그 말을 따를수록 더 깊이 망가질 뿐이었다.

나를 살린 건 더 강해지라는 말이 아니라, 멈춰도 된다는 허락

결국 나는 그 일을 끝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끝까지 가지 않기로 선택했다. 더 밀어붙이면 정말로 회복할 수 없는 지점까지 갈 것 같다는 감각이 분명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만두는 순간, 그동안 들었던 모든 말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조금만 더 했으면 됐을 텐데.”
“여기서 포기하면 지금까지가 다 헛수고야.”
“의지만 있으면 되는 걸 왜 그만두냐.”

이 말들은 실제로 누군가가 하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그만두는 선택은 곧 나약함을 인정하는 일처럼 느껴졌고, 실패를 확정 짓는 행위처럼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망설였다. 하지만 동시에, 더 가면 안 된다는 감각도 분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멈추고 나서야 숨이 쉬어졌다.
실패라는 결과는 그대로였지만, 내 상태는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다. 잠을 제대로 자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도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는지,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보였다.

돌이켜보면, 나를 살린 건 새로운 조언이 아니었다.
“다시 도전해라”도 아니었고,
“이번엔 다를 거다”도 아니었고,
“끝까지 가야 의미가 있다”도 아니었다.

나를 살린 건 아주 단순한 인식 하나였다.
이 실패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실패는 더 이상 나의 무능함이나 나약함을 증명하는 증거가 아니게 되었다. 실패는 여전히 실패였지만, 나라는 사람 전체를 부정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인식이 생기자, 다시 같은 방식으로 나 자신을 증명하려는 강박에서도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조언이 도움이 되지 않았던 이유도 이제는 분명해졌다. 그 조언들은 대부분 결과 이후의 시점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이미 다른 위치에 도달한 사람이, 과거의 과정을 단순화해서 정리한 말들이었다. 그 말들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모든 말에는 적용 가능한 시점과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실패를 통해 배웠다.

“하면 된다”는 말은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어떤 순간에는 “하면 된다”보다
“지금은 멈춰도 된다”는 말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의지는 무한하지 않고, 사람의 상태는 늘 변한다. 실패를 무조건 의지의 문제로 환원하는 순간, 우리는 너무 많은 맥락을 놓친다. 그리고 그 맥락을 놓친 조언은, 아무리 선의라 해도 누군가에게는 가장 무책임한 말이 될 수 있다.

실패는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 실패를 이유로 나 자신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던 순간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