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나를 설명하지 않기로 한 결정 오늘은 나를 단순하게 정의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물러서기로 한 내용을 설명하러한다.

나는 언제부터 설명 가능한 사람이어야 했을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사람들 앞에서 설명 가능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생각이 많다는 말, 망설임이 잦다는 말,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는 말은
언제부턴가 장점이 아니라 고쳐야 할 성향처럼 취급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정리하려 했다.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어야 안심했고,
간단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어야 받아들였다.
“너는 원래 그런 타입이잖아.”
“넌 항상 그렇게 생각하더라.”
그 말들은 마치 나를 오래 봐왔다는 증거처럼 사용됐지만,
실은 나를 더 보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때마다 설명을 덧붙였다.
“그땐 그랬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보였을 수 있지만 사실은…”
나는 나를 단정하지 말아 달라고, 조금만 더 복잡하게 봐 달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하지만 설명을 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 이상해졌다.
사람들은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고,
설명을 이해하기보다는 요약하려 들었다.
“아, 그러니까 네 말은 이거네.”
그 요약 속에는 늘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내가 왜 망설였는지, 왜 쉽게 말하지 못했는지,
왜 확신보다 질문을 택했는지는 사라지고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남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런 의문을 품었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나를 설명해야 하지?’
‘왜 나는 이해받기 위해 나를 단순화해야 하지?’
나를 단순하게 정의하려는 시선 앞에서
나는 늘 나를 더 많이 풀어놓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설명을 다 마치고 나면
나는 조금도 이해받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오히려 내가 스스로를 과장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변명한 것 같아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문제는 설명의 부족이 아니라,
나를 이해할 의지가 없는 자리에서
계속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복잡한 나를 설명하려다 점점 나를 잃어갔다
나는 본래부터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선택 앞에서도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떠올렸고,
한 가지 감정 안에서도 서로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다.
확신보다 질문이 먼저 나왔고,
결론보다는 과정이 중요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 서면
그 복잡함은 불편한 것이 되었다.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
“그냥 간단하게 보면 되잖아.”
그 말들이 반복될수록 나는 스스로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순서로 정리했고,
말하다가도 상대의 표정을 보며
“이건 굳이 말하지 말까” 하고 지웠다.
그렇게 나는 점점 ‘설명하기 좋은 나’를 만들어갔다.
애매한 감정은 제거하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은 덮어두고,
말로 풀기 어려운 마음은 없었던 것처럼 처리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설명은 점점 매끄러워졌는데,
설명을 마친 뒤의 나는 점점 텅 비어갔다.
말은 했지만 나 자신은 남아 있지 않았다.
밤이 되면 자주 허탈해졌다.
분명 대화를 했고, 관계도 유지되었는데
마음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고독이 남았다.
‘나는 분명 말을 했는데,
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것 같지?’
그때 깨달았다.
복잡한 나를 설명하려는 이 노력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나를 줄이는 일이 되고 있었다는 걸.
사람들이 원하는 설명은
나의 전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만 필요했고,
그 범위를 벗어나는 나의 복잡함은
과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나는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나 자신을 계속 잘라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 스스로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원래 이렇게 단순했나?’
‘내가 너무 복잡하게 굴고 있는 건 아닐까?’
복잡한 나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설명이
결국 나를 의심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를 단순하게 정의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물러서기로 했다
결정적인 순간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찾아왔다.
누군가 또다시 나를 한 문장으로 규정했을 때,
나는 예전처럼 반박하지 않았다.
설명할 말도 있었고, 바로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지금 나를 알고 싶어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정리하고 싶은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하나의 결정을 내렸다.
나를 단순하게 정의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물러서기로.
그 물러섬은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이 아니었다.
다만 그 자리에서
나를 증명하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
나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시선 앞에서
더 이상 나를 펼쳐 보이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이제 나는 누군가 나를 쉽게 규정해도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난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말하지도 않고,
복잡한 맥락을 꺼내 들지도 않는다.
그저 그 정의를 그대로 두고
한 발 물러선다.
놀랍게도 그렇게 하자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였고,
침묵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관계는 자연스럽게 갈라졌다.
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려는 사람들은
점점 멀어졌고,
나를 복잡한 채로 두는 사람들만 남았다.
그들은 나를 쉽게 말하지 않았다.
“그럴 수도 있겠다.”
“아직 정리 중일 수도 있지.”
그 말들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이해였다.
그 이해 앞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줄이지 않아도 되었다.
복잡한 나를 설명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나를 숨기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끝까지 데려가겠다는 약속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이해받기 위해
나를 단순화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이제 나는 안다.
나를 단순하게 정의하려는 사람들 곁에 오래 머물수록
나는 점점 나를 잃게 된다는 것을.
반대로, 나를 복잡한 채로 두는 사람들 곁에서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나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물러선다.
설명해야만 머물 수 있는 자리에서,
증명해야만 인정받는 관계에서.
복잡한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나는 가장 솔직한 상태로 존재한다.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아진 나로,
단순해지지 않아도 되는 나로.
그리고 이제는 확신한다.
나를 단순하게 정의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물러서기로 한 그 결정이,
지금까지 내가 나를 위해 내린
가장 정직한 선택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