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 나를 지켜주지 못했던 경험 오늘은 해명할수록 나는 더 작아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를 이야기 해보러합니다.

나는 왜 그렇게 자주 설명하고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설명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누군가 내 행동을 다르게 받아들였을 때, 의도가 왜곡되었다고 느껴질 때, 그 오해를 바로잡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불편함은 단순한 억울함이 아니라, 나에 대한 오해가 그대로 굳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늘 한 발 먼저 나섰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
“내가 그때 그렇게 말한 건 이런 상황이었거든.”
“혹시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해.”
설명은 습관처럼 나왔다. 상대가 묻지 않아도, 굳이 요구하지 않아도, 나는 스스로를 변호하듯 말을 이어갔다.
그때는 그게 성숙한 태도라고 믿었다.
오해를 방치하지 않는 것, 감정을 정리해 전달하는 것, 관계를 위해 한 번 더 설명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어른스러움’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명이 반복될수록 이상한 감정이 쌓여갔다. 설명을 하고 난 뒤에도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을 준비하는 내가 보였다.
상황이 생기기도 전에, 혹시 오해가 생길까 봐 말의 끝을 흐리고, 행동을 조심하고, 나중에 덜 설명해도 되도록 스스로를 제한하고 있었다. 설명은 나를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라, 나를 미리 움츠러들게 만드는 틀이 되어 있었다.
설명은 나를 이해시키지 못했고, 나를 작게 만들었다
결정적인 순간은 설명이 통하지 않는 경험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찾아왔다.
아무리 차분하게 말해도, 아무리 맥락을 정리해 전달해도, 어떤 사람들은 이미 나에 대한 결론을 내려둔 상태였다. 그들에게 설명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는 걸 확인하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때부터 설명의 성격이 달라졌다.
나는 이해를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선택 하나가 다시 평가의 대상이 되었고, 나는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다. 설명은 늘어났지만, 존중은 따라오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설명을 많이 할수록 내 입지는 좁아졌다.
말이 길어질수록 내 확신은 흐려졌고, “이건 사실 이런 거야”라는 문장보다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라는 의문이 더 자주 떠올랐다. 설명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설명은 언제나 중립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사람은 이미 한 단계 아래에서 시작한다. 상대는 판단자이고, 나는 해명자였다. 이 구조 안에서는 아무리 정직해도, 아무리 진심이어도, 나는 계속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설명이 나를 지켜주지 못한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나를 보호하려고 설명했지만, 사실은 상대의 오해를 기준으로 나를 재편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나답지 않은 사람이 되어갔다.
설명하지 않기로 했을 때 비로소 지켜진 것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 오해는 꼭 풀어야 하는 걸까?’
그 질문은 생각보다 큰 균열을 만들었다. 그동안 나는 오해를 방치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니, 설명으로 지켜낸 관계보다 설명 때문에 지쳐버린 마음이 더 많았다.
그래서 아주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모든 오해에 반응하지 않기.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는 침묵하기.
상대가 묻지 않는 해명은 굳이 꺼내지 않기.
처음엔 불안했다.
침묵은 무책임처럼 느껴졌고, 오해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예상과는 다른 변화가 나타났다. 나를 오해한 채로 멀어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설명하지 않아도 태도가 변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 차이는 분명했다.
설명이 없어서 떠난 사람들은, 애초에 나를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내가 굳이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었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됐다.
설명하지 않는 선택은 관계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선택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든 오해를 풀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스스로에게 허락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서둘러 말하지 않는다.
나를 오해하는 시선 앞에서 즉각적으로 나를 펼쳐 보이지도 않는다. 설명이 필요한 순간에는 여전히 말하지만, 나를 깎아내리면서까지 이해를 구하지는 않는다.
해명할수록 나는 더 작아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나는 알았다.
설명이 나를 지켜주지 못했던 게 아니라,
나를 지켜야 할 사람이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