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거부하는 법을 배운 순간
실패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말은 언제나 비슷했다.
“괜찮아.”
“다 그런 거야.”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그 말들은 틀리지 않았다. 악의도 없었고, 대부분은 진심 어린 위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을수록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쌓였다.
나는 실패 자체보다, 그 실패를 둘러싼 ‘괜찮다’는 말들 때문에 더 혼란스러웠다. 오늘은 누군가의 '괜찮다'라는 말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러한다.

괜찮다’는 말이 나의 감정을 지워버릴 때
실패 직후의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실망했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으며, 무엇보다 마음이 복잡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그 복잡함을 더 이상 꺼내놓을 수 없게 되었다.
이미 괜찮다고 정의된 상황에서,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나는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 위로는 나를 다독이기보다, 감정을 빠르게 정리하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아직 슬픔이 끝나지 않았는데, 벌써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 압박. 실패를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감정을 접어두라는 요구였다.
나는 점점 내 감정을 축소했다. “이 정도는 괜찮지.” “나만 유난일지도 몰라.”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진짜 마음은 뒤로 밀어냈다.
나중에 깨달은 건, 그 위로가 틀려서가 아니라 너무 빨리 도착했기 때문에 독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감정이 아직 말을 걸고 있는데, 위로는 이미 결론을 내려버렸다.
그때부터 ‘괜찮다’는 말은 위안이 아니라, 내가 느낄 권리를 빼앗는 문장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위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한동안 나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왜 이렇게 좋은 말을 듣고도 마음이 불편할까. 왜 남들의 위로를 고맙게 받지 못할까. 혹시 내가 삐뚤어진 사람은 아닐까.
하지만 실패를 몇 번 더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위로가 항상 필요한 형태로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실패는 공감보다 해석이 필요하고, 어떤 순간에는 위로보다 침묵이 더 도움이 된다. 그런데 우리는 위로를 거부하면 냉소적인 사람처럼 보일까 봐, 혹은 상대의 호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보여서, 억지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그랬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했고, 위로에 맞춰 감정을 정리하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위로를 거부하지 못한 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더 큰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위로는 상대의 마음이지만, 그 위로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나의 권리였다.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을 뿐이다.
위로를 거부하는 법을 배운 이후의 변화
처음으로 위로를 거부했을 때, 나는 아주 조심스러운 말을 골랐다.
“지금은 괜찮다는 말보다, 그냥 이 상태로 있어도 괜찮다는 게 필요해.”
그 말은 상대를 밀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경계였다. 놀랍게도, 그 말을 하고 나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위로를 거부한다고 해서 혼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이후로 나는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고,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실패 이후의 감정을 서두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회복에는 속도가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정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나는 위로를 가려서 받는다. 어떤 말은 도움이 되고, 어떤 말은 아직 이르다. 그리고 이 선택은 나를 차갑게 만들지 않았다. 대신 실패 앞에서 나를 더 정직하게 만들었다.
괜찮지 않은 상태를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내가 실패 이후에 배운 가장 중요한 태도였다.
누군가의 “괜찮다”는 말이 독이 되었던 경험은, 나에게 위로의 새로운 기준을 남겼다. 위로란 감정을 덮는 말이 아니라, 그 감정이 머무를 자리를 허락하는 것이라는 기준.
그 이후로 나는 실패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아직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