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와 자기평가를 분리하는 연습
실패했을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성과가 아니라 자기평가다. 일이 잘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자존감을 결정한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자존감은 잃지 않았던 이유를 애기히러한다.
나는 여러 번 실패했지만, 그때마다 자존감까지 함께 무너지지는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느 순간부터 결과와 나를 같은 선상에 두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연습했기 때문이다.

결과가 곧 나의 점수처럼 느껴지던 시기
한때 나는 결과에 지나치게 정직한 사람이었다. 잘되면 내가 괜찮은 사람 같았고, 실패하면 내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결과는 평가표였고, 나는 그 점수표를 매번 가슴에 들고 다녔다.
문제는 그 점수가 단기적일수록, 자존감의 진폭도 함께 커졌다는 것이다. 작은 실패에도 스스로를 과하게 비난했고, 잘된 순간에도 오래 기뻐하지 못했다. 다음 평가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실패한 날에는 머릿속 문장이 단순해졌다.
“역시 나는 이 정도다.”
“내가 하면 항상 이렇다.”
결과 하나가 곧 나의 전체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확대되었다. 그때의 나는 실패를 경험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늘 변하는데, 왜 그 변동성을 그대로 나에게 덮어씌우고 있을까.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나를 정의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 깨달음이, 결과와 자기평가를 분리하려는 첫 시도였다.
결과와 나 사이에 거리를 두는 연습
결과와 자기평가를 분리한다는 것은,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아주 작은 질문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못했을까?” 대신
“이번 결과에 영향을 준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의 차이는 크다. 전자는 나를 향하고, 후자는 상황을 향한다. 나를 공격하는 대신, 맥락을 살피는 질문을 던지자 실패는 조금 덜 개인적인 사건이 되었다.
또 하나의 연습은, 결과를 말할 때 형용사를 줄이는 것이었다. “참담한 실패”, “완전한 패배” 같은 표현 대신, 사실에 가까운 문장만 남겼다. 결과를 설명하되, 평가를 덧붙이지 않는 연습이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결과는 언제나 여러 요인의 합이라는 점이다. 노력의 정도, 타이밍, 환경, 운, 그리고 나의 선택. 그중 일부는 통제할 수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늘 모든 책임을 나에게로만 끌어당기고 있었다. 결과와 나를 분리하기 시작하자, 책임은 남기되 자기비난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실패 이후에도 자존감이 남아 있었던 이유
결과와 자기평가를 분리하는 연습을 반복하면서, 실패 이후의 감정 곡선이 달라졌다. 여전히 실망했고, 아쉬웠고, 때로는 좌절했다. 하지만 그 감정들이 곧바로 자기혐오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실패한 나와, 무가치한 나는 더 이상 같은 문장이 아니었다.
자존감은 성공의 총합이 아니라, 실패 앞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더 가까웠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나에게 최소한의 존중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자존감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그 존중은 거창한 자기암시가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 태도에서 나왔다. “이 결과가 나를 전부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문장을 마음속에 남겨두는 것.
지금도 나는 실패한다. 결과는 여전히 좋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평가하는 목소리는 예전보다 훨씬 조용해졌다.
결과를 분석하되, 나를 깎아내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실패했지만 자존감을 잃지 않았던 가장 현실적인 이유였다.
결과와 자기평가를 분리하는 연습은 나를 더 잘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실패해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어떤 성공보다도 오래 남는 자산이 되었다.